한겨레 - 서울 대학 지방 이전은 헛물켜기, 지방사립대 위기부터 직시를

대학언론인 네트워크
2022-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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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hani.co.kr/arti/opinion/because/1058623.html


지난해 3월 지방의 한 사립대 학생들이 강의실을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3월 지방의 한 사립대 학생들이 강의실을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왜냐면] 박주현 | 부산 대학언론인 네트워크 위원장·동아대학보 선임기자



‘아님 말고 식’ 정치가 또 등장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지난 6일 뜬금없이 대기업과 특목고를 비롯해 서울대·연세대·고려대·서강대를 지방으로 이전시키겠다고 밝혔다. 대학 등록금 인상 규제 완화, 만 5살 조기 취학 학제개편 당시처럼 성난 여론에 정부가 후퇴하는 모습이 이번에도 그려질 참인가 보다.



이른바 잘나가는 대학들을 지방으로 옮기겠다는 계획이 과연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을까. 지난해 부산교대·부산대가 통폐합 양해각서를 체결했지만, 학내 구성원들의 반대에 아직도 상당한 진통을 겪고 있다. 서울 지역 대학 네곳의 지방 이전은 이와는 비교하기 힘들 정도의 집단 반발에 부닥칠 게 뻔하다. 더욱 큰 문제는 이 장관이 수도권 집중 완화와 지역균형발전이라는 미명을 내세웠지만 매우 근시안적인 대책이라는 것이다.


이 장관 말대로 거론된 대학들이 지방으로 이전했다고 가정해보자. 견고했던 ‘스카이(SKY) 캐슬’은 무너질 것이다. 그렇다고 학벌 해체가 이뤄질까? ‘서연고서’가 사라진 자리를 다른 수도권 주요 대학이 차지하리라.


대학은 부동산이다. 전철이나 케이티엑스가 대학 부근에 서느냐에 따라 그 대학 입시 결과가 달라진다. 그만큼 지리적 이점은 수험생의 수요를 자극한다. 교육평론가 이범은 대학 서열의 원인으로 지리적 위치보다 교육 여건이 단연코 중요하다고 말한다. 합리적인 주장이다. 그가 주장하는 것처럼 대학이 학생에게 투자하는 비용인 ‘학생 1인당 교육비’가 높은 대학 순이 통념적인 대학 서열과 유사하다. 하지만 분교인 고려대 세종캠퍼스와 연세대 원주캠퍼스는 학생 1인당 교육비가 상위권 축에 속하지만 왜 상위권 대학으로 거듭나지 못할까. 수도권이 아니라는 점은 무시하지 못할 요소임이 분명하다.


이 장관의 발언 이후 김종영 경희대 교수가 제안한 ‘서울대 10개 만들기’ 구상도 급부상했다. 지역거점 국립대 9곳을 서울대 예산 수준으로 투자하자는 뜻이다. 이 장관이 얘기한 대책보다 이것이 수도권 집중 완화에 더 효과적이다. 그러나 필자는 지방사립대 학부생으로서 이 방안을 뒷순위에 둬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역거점 국립대 중심으로 정책이 펼쳐지면, 지방사립대 붕괴 속도는 더욱 빨라진다. 전국 186개 대학 가운데 지방사립대는 86개로, 절반 가까이 차지한다. 정원 역시 188만명 가운데 76만명으로, 지방사립대 학생 비율은 40% 수준이다. 지방 중소도시에도 포진한 지방사립대 존폐는 그 지역의 존립과도 연계된다. 결국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지방사립대 위기 해결이 최우선 과제다. ‘벚꽃 피는 순서대로’ 대학이 문을 닫기 전에 어서 관련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지방사립대 전체를 정부책임형 사립대로 전환하는 건 어떤가. 대학교육연구소가 고안한 대로 사립대 재정 절반을 정부가 부담하는 방안이다. 부실 대학은 폐교 수순을 밟고, 대학 투명성을 강화하고, 교육의 질을 높여 경쟁력 있는 지방사립대를 육성하자는 것이다. 이를 위한 ‘고등교육재정교부금법’ 국회 통과가 시급하다. 지방사립대의 백화점식 종합대학 형태도 탈피해야 한다. 일본은 사립대 간 학부 양도 정책을 도입했다고 한다. 대학마다 경쟁력 있는 학부만 존치해 지방사립대의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


윤석열 정부는 무너지고 있는 지방사립대를 향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 서울 대학 지방 이전 같은 헛물켜는 발언이 아니라, 급한 불부터 끄는 대책이 필요하다. 교육부의 수도권 대학 정원 규제 완화 추진을 보며, 정부가 지방사립대 위기를 인지하고는 있는지 우려스럽다.